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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 나카마로(阿倍仲麻呂, 698년?~770년) 생애 업적 견당사 왕유

by frontier12 2025. 2. 20.


아베노 나카마로는 나라 시대 일본에서 견당사로 파견되어 당나라에서 고위 관직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그는 당나라에서 조형(晁衡)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당대 문인들과 교류하며 일본과 중국 간의 문화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일본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당나라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의 삶은 동아시아 교류사의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으며, 그가 남긴 시와 그의 친구들이 그를 위해 지은 시는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1. 생애와 업적

1) 출생과 견당사 파견

아베노 나카마로는 698년경 일본 **야마토국(大和国, 현재의 나라현 일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717년 제9차 견당사로 선발되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때 함께한 인물로는 일본의 학자로 유명한 **기비노 마키비(吉備真備)**와 승려 **겐보(玄昉)**가 있었습니다. 나카마로는 당나라에서 학문을 연마하며 유학 생활을 시작하였고, 과거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습니다.

2) 당나라에서의 정치 활동

나카마로는 당나라의 **국자감(國子監, 최고 학문 기관)**에서 수학하며 중국 문화를 깊이 익혔습니다. 이후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당 현종(唐玄宗)의 신임을 받아 비서감(秘書監),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등의 중요한 관직을 역임하였습니다.

당나라 조정에서 그는 행정 업무뿐만 아니라 한·중 문화 교류에도 기여하였으며, 특히 당대의 저명한 문인인 이백(李白), 왕유(王維) 등과 친분을 맺고 교류하였습니다.

2. 귀국 시도와 좌절

1) 일본 귀국 시도의 실패

나카마로는 평생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으나, 여러 차례 귀국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패하였습니다.

특히 753년,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항했으나 폭풍을 만나 배가 난파되어 안남(安南, 현재의 베트남) 지역에 표류하였습니다. 이때 그가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친구 **이백(李白)**은 그를 애도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나카마로는 살아남아 다시 당나라로 돌아갔으며, 이후에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당나라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2) 당나라에서의 말년과 최후

나카마로는 당 숙종(唐肅宗)과 대종(代宗)의 치세 동안에도 계속 당나라에 머물렀으며, 관직을 유지하며 활동하였습니다. 770년경 장안(長安)에서 생을 마감하였으며, 그가 일본으로 돌아가길 원했다는 사실은 동시대 문인들이 남긴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3. 아베노 나카마로를 위한 송별시

나카마로는 일본을 떠날 때와, 귀국을 시도할 때 여러 시인들로부터 환송시를 받았습니다. 이들 시는 그가 일본과 중국 양국에서 중요한 존재였음을 보여줍니다.

1) 아베노 나카마로가 남긴 시

나카마로는 일본을 떠나기 전, 친구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天の原 ふりさけ見れば 春日なる
三笠の山に 出でし月かも

(하늘 너머를 바라보니,
고향 나라(奈良)의 봄날 산에
떠오른 그 달이 보이는구나.)

이 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친구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감정을 담고 있으며, 일본의 백인일수(百人一首)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2) 왕유(王維)가 지은 송별시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왕유(王維)**는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나카마로를 위해 다음과 같은 송별시를 지었습니다.

送秘書晁監還日本國
(비서감 조형을 일본으로 보내며)

積水不可極  바다는 끝이 없는데,
安知滄海東  어찌 창해의 동쪽을 알 수 있으리오?
九州何處遠  구주(九州) 가운데 어디가 가장 먼가?
萬里若乘空  만리 길을 가려면 허공을 타야 하리.
向國惟看日  나라를 향하여 오직 해만 바라보겠고,
歸帆但信風  돌아가는 돛대는 다만 바람에 맡겨야 하리.
鰲身映天黑  큰 거북이 몸이 하늘에 비쳐 시커멓고,
魚眼射波紅  물고기 눈은 파도 속에서 붉게 빛나네.
鄕樹扶桑外  고향의 나무는 부상의 밖인데,
主人孤島中  너는 외로운 섬의 주인이 되겠구나.
別離方異域  헤어지면 곧바로 이역이 되니,
音信若爲通  소식을 어찌 전할 수 있으랴?

이 시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나카마로와의 이별의 아쉬움과 동쪽 바다 너머 일본에 대한 신비로운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유가 이 시를 지었을 당시 나카마로는 결국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이 시는 더욱 애틋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4. 역사적 의의

1) 한·중·일 문화 교류의 상징

아베노 나카마로는 일본과 중국을 잇는 가교적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는 일본에서 당나라로 파견된 유학생이었으나, 단순한 유학생이 아니라 당나라에서 관직을 역임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의 생애는 나라 시대 일본의 국제적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며, 특히 동아시아 국가 간의 학문과 문화 교류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인물입니다.

2) 일본 문학과 중국 한시에 남긴 흔적

나카마로의 시와, 그를 위한 왕유의 시는 모두 당대 문학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특히 그의 고향에 대한 시는 일본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왕유의 송별시는 중국 한시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3) 그의 이야기가 남긴 교훈

나카마로의 삶은 국경을 넘어 학문과 정치에 기여할 수 있었던 인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현대에도 여전히 국제 교류와 협력의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한 채 타국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한·중·일의 문학과 역사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